사랑의 다양성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의 어느 부분이 많으실까요. 남성이기만 하신 걸까요. 여성이기만 하신 걸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 남성이신 하나님을 남자가 사랑하면 동성애가 되고, 여성이신 하나님을 여자가 사랑하면 동성애가 있습니다. 남성이신 하나님을 여자가 사랑하면, 여성이신 하나님을 남자가 사랑하면 이성애가 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을 닮게 사람인 남자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으로부터 여자인 이브를 만드셨습니다.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에게는 남성과 여성을 포함하여 인간의 성을 뛰어넘는 훨씬 다양성과 복잡성을 이루는 상태를 포함하고 계실 수 있다는 추론을 해 볼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의 삶을 허락하신 그 환경 내에는 지구적인 모습이 적절한 것입니다. 지구의 주요 구성원인 인간 그리고 남자인 아담과 후손인 남자에게 발견되는 여성 호르몬을 통해 아담에게 여성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음에도, 그렇다고 아담을 여자인 아담으로 여겨지고 불려지는 곤란하다고 봅니다. 안되냐고 물을 수는 있습니다만, 제 견해는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견과는 얼마나 많은 양의 논의의 글을 써나가야 할지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앞서 내놓은 작품을 통해 느끼셨을 있듯, 무순 얘긴가 하시는 분은 그냥 전시회 관람 왔다고 여기시면 좋을 같습니다.

동성애 등의 역사는 오래 되었음을 알고, 근래 이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관련된 당사자의 삶과 그들이 겪는 불안, 욕구 등을 이해하고픈 마음이 있습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할 있습니다. 때가 되어 밝혀 지듯, 태양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편, 지구의 삶이 태양계와 우주내의 주인적 모습으로 있다는 주장에는 그럴 있겠다고 있습니다. 과거 멸종 했다는 거대 동물의 모습, 공룡의 존재와 연관 지어 우주와 지구의 나이를 상상키 힘든 매우 오랜 세월이라는 연속선 상에서 해석하는 모습이 존재 있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가지고, 이런 저런 조합을 하여 공룡의 모습을 만들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습을 받아들이는 인간이 그것이 실제인지 아닌지는 논란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것 저것 만들어 내어, 그것이 자동차가 되고, 비행기, 선박이 되기도 합니다. 다양한 음식이 가공되어 없던 모습의 음식이 소개 됩니다. 과거에는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작은 단위로 살피면 이전부터 있던 것 입니다. 과학, 기술 등의 발전으로 다른 모양으로 가능해 것이죠.

휴지를 버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 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공적으로 허용하는 표현의 이후는 어찌 되겠는가를 살피는 것은 지역을 살고 있는 전체적인 관점으로도 살펴야 합니다. 휴지를 버려도 됩니다. 줍는 사람을 고용할 테니 라는 공적인 입장을 보인다는 것은 어떠한가요.

도로의 표지판과 건넘의 구역의 표시 등이 있습니다. 그것을 어기고 횡단 등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표지판을 항상 통행 가능 상태 등으로 표시하여 상시 건너거나 항상 직진해야 하는 등을 하여야 한다면, 많은 도로의 운행 지시, 표지는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한 표지를 도대체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일어난다면, 사람의 문제이고, 모든 사람의 이해와 양해를 구해야 하는 차원의 개인적 차원을 넘어, 모든 이에게 적용 시켜 달라는 것은 또한, 무슨 의도인가를 스스로 살펴보길 바랍니다. 

하지 말아야 일을 하는 사람에 의해 일어난 행위의 결과에 대하여 상위의 관리 계층서 일어난 행위의 결과를 적절히 처리하여 주는 것이 옳고 바람 하다고 봅니다. 그것이 교육이고, 인간이기를 유지하는 인간다운 삶이 아닌가요. 그래서 창조주께서 주신 법이 있고, 인간의 세대가 모여 만든 법이 있다고 봅니다. 자체에 무엇이 문제이고, 아닌지를 구분히기 힘들어 하는 혼돈의 세태의 등장은 무엇 때문으로 보는가요.

사회 구성원의 각자의 삶의 모습과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는 다양할 있고, 당사자 간의 문제라고 말할 있습니다. 조직의 구성원이든, 가족의 구성원이든 그것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모든 이에게 각자의 삶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를 지향하는 삶이 있을 있겠으나,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공적으로 주어지는 모습은 사회를 옳고, 건전하게, 이끌어 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러한 윤리, 도덕, 제정이 불필요하지 않는가요.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이 많이 있습니다. 자위행위도 다르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동성애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주변의 환경에 감탄하며, 사랑하는 모습과 연관 짓기는 말기를 바랍니다.

마음으로 죄도 죄와 같다 하여도, 마음으로 지은 죄는 실제의 죄와 같이 처벌을 해서는 곤란하지 않는가요. 예수님이 지적하심은 당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하신 것이지, 피해자에게 잘했다 고 지지하신 것은 아니지 않는가요.

노아의 심판 이후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심을 죄를 없다 하심이 아닙니다. 그러한 혼돈과 타락의 세태를 다시 산다는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지 않는가요. 그것으로부터 잘잘못을 깨닳아 생활하라는 말씀을 오용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간음한 여인의 사건 이후, 그런 생활이 괜찮은 갑다 하며, 그러한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옳은 것으로 여기는 가요.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죄를 용서하시며, 율법의 계명을 통한, 주의를 주시고 사랑으로서 다시는 짓지 말라 하심을 오용, 혼동 해서는 되지 않는가요.

고의적이며, 의도적인 모습과는 달리, 논란의 여지가 있는 극히 일부의 선천적 염색체 이상 가능성으로 인함과 성장기의 잘못된 환경에 의한 동성애는 장애, 질병의 범주에 속한다고 합니다. 모습은 치유의 대상이지, 그것이 최종의 완성되고, 옳고 좋은 것이 아니지 않는가요. 질병의 와중에, 치료 중에 일 등의 생활을 나갈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경중의 차이가 있겠지만, 각종 질병에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이해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무엇이 최선이고, 바람직한지 얻고, 배워 나아갈 있다고 봅니다. 당사자들은 겸허히 생각해 보면 좋지 않겠는가요

비난과 비판은 해결보다 쉽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존재의 모습에 사회적으로 어떻게 하여야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봐야 합니다. 방안 없이 비난만을 한다면, 서로간의 다툼과 반목으로 사회는 분열 되어 것입니다. 그들을 치유의 대상으로 인식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일정 부분 제한적인 법의 테두리 내에서 치유 받으면서 있도록 하는 제정이 옳다고 봅니다. 지나친, 위해의 경우 격리되는 것이 필요하겠고, 일정한 정도의 , 타인과 공동체에 위해가 되지 않는 삶의 범주 내에는 치유 받으면서 있도록 하고, 동성간의 애정의 자체는 주변서 허용 있으나, 그것을 제도화하여, 결혼 등의 모습을 취하는 부분에 대하여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 사랑할 수 있음에도 제도화, 공식적으로 용납되는 모습이길 원하는 그들의 욕구는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한 사회의 모습을 여러모로 살펴 봐야 할 입장도 있지 않는가요.

지구 전체를 때도, 모든 지역 내에 사랑의 제한은 없습니다. 그러나, 일부 형태의 결혼을 유지하길 원한다면, 일부 지역 내에서 가능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여행 등의 자유가 있음과 동시에 치유의 상태 임을 인지하는 삶을 살도록 당사자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그리고, 일부 지역서 허용하고 있는 모습을 무조건 허용하는 것으로 여겨 지지하고 좋아 할 것으로 여겨서는 곤란하진 않는가요. 그것은 오히려 무관심일 있으며, 포기의 모습과 관련이 있지 않나요. 한편, 당사들의 주장을 고침과 치유를 원하는 이의 호소로 여겨야 하지 않는가요. 허용의 요구, 그 이면에 있는 치유해 달라는, 치료제를 개발해 달라는 호소를 간과하고 있지는 않는가요.

좋은 것을 지향하는 , 그것이 인간의 중요한 존재 이유가 아닌가요. 그 모습이 좋은 경우, 지속하고, 많은 사람과 가족에게 권할 것 입니다.

Apr 2015

 

 

무인도 보다는 한적하게 쉬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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