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son

우리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가고 있는 곳을 아는가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의 의미를 아는가 라는 복잡한 모습을 좀 뒤로하고, 그런 모습에 놓여 있다는 것 자체를 아는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관계가 좋고 나쁨의 삶의 모습에 놓여 있음에도, 그 관계의 놓임이, 높은 벼랑의 위에서 위태로운 모습이라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면 그렇게 서로간에의 관계성이 계속 비슷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태양계라는 위치와 놓인 모습에 대하여 이전보다 많은 이해에 이른 세대에 있어서, 햇빛과 물과 공기와 바람 등의 가치에 무감각한 모습이 있음과도 같이, 사람은 대세와 흐름을 파악하려고 하며 그에 따르는 이 시대의 유목민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적절한 필요에 의하여, 누군가의 집이 새로운 계획으로 수몰되는데 계속 거주하겠다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라 평가 받듯, 누군가의 거주지에 화재가 일어나 불타는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겠다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되듯, 누군가의 속한 모습이 비 정상적인데 그 곳에서 움직이지 않겠다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주어진 환경과 삶에 적응을 해 나가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이상한 모습의 이면에는 선과는 거리가 있는 다른 존재, 사탄 등의 존재가 있을 수 있음을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폭풍우 등의 경험에 그곳을 떠나지 않고 다시 돌아옴은 그곳에 그런 모습이 지나갔으며, 얼마간 찾아오지 않을 것이며,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에 대한 안도와 기대이며, 다른 곳에 정착할 마음과 의지보다는 그 곳에 있음으로 얻는 유익에 대해 좀 더 집중을 하고 있기에 그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데도 결국에는 비슷할 것이라는 마음도, 그곳에의 좋음의 긍정이 있기에 그런 모습일 것입니다.

어떤 현상의 발생과 그에 대한 반응과 대응이 일어나는 가운데, 대체로 약한 곳이 상대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몸이 그렇듯, 관계가 그렇고, 지역이 그러하며, 지구라는 공동체의 관계성과 물리적인 공간에도 시간에 기초하여 그런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는 당시에는 무심해도 얼마간의 이후 때에, 무언가로부터 보호를 받았음을 자각하는데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에도 그러하며, 창조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손길이 그간에 주변에 존재해 있어왔음을 알게 되는데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자각은 좋은 모습입니다.

폭풍우가 불어 상대적으로 자신의 입지는 안전하여도, 이는 어느 공간과 지역의 막아줌의 고통을 통해, 보호를 받게 되었음 이라는 자각에 이르게 될 수 있습니다.
지진에 대하여도, 이는 무언가 자연의 섭리 가운데 고난이 있음에도, 그것의 필요가 부합하여 존재하게 되는 자연의 섭리이자 그를 지으신 하나님의 일하심이라고 언급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의 그 고난과 고통을 자신을 경험하고 있지 않다면, 이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와 그 공간과 지역에의 대신 막아줌으로 인해 보호받고 있음을 알게 되는 인생은 그렇지 않음의 무지함보다는, 삶에 대해 이해의 폭이 좀더 넓은 좋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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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라는 태양계의 공간에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이 혼재하는 가운데, 오늘날의 사람으로서는 감히 어쩔 수 없는 우주와 태양계의 물리 역학적 모습의 균형과 행보에 의해 일어나는 부분을 별도로 하고, 대체로 사람이 그 일에 대해 경험하게 되는 모습을, 우리의 공동 책임 아래 놓여 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것이죠.

개발론자와 환경론자의 갈등과 같이, 어쩔 수 없는 동전의 양면, 선과 악의 공존, 양날의 검 이라는 등의 비유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사람이 행할 수 밖에 없음에도, 좀 더 신중을 기하여 살펴볼 것을 살펴보자는 접근론이 여러 분야의 학계에서 행하는 일일 것입니다. 과거에는 무지하여 행하였음에도, 이제는 좀 잘 알게 되었으니 그런 무지의 반복을 해서는 되겠는가라는 데 이른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폭풍우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거니와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재해로 일어날 것에 대한 상쇄적인 긍정의 측면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기도 합니다. 지구 내부의 순환 필요성과 이에 더하여 우주와의 순환으로 이어주는 모습이 되기도 하는 것이며, 이동 기구의 동력 기관과도 같이, 우주에 놓여 흐름을 유지하는 지구와 태양계의 행보에 일조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데 있겠습니다.

근래 사람들은 이를 다루어 보려는 시도를 또한 과학계를 주축으로 하고 있음의 기사 등을 접하고 있듯, 이 또한 사람에게 일을 주기도 하거니와 긍정에 따른 부정의 부분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AI, 양자 컴퓨터의 시대에 이른다 하여도 주의해야 할 것이 그렇지 않은 것이 되지는 않을 것임을 압니다.

경제에도 충격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으면 순환이 되지 않는 모습이기에 그런 모습이 등장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지진은 어떠한가요. 성경에도 오래 전부터 기록이 되어 있음을 가늠해 볼 수 있음에도, 근래의 지진에 대한 이해는 다른 분야와 같이 좀 더 많은 이해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이런 부분들은 전문가분들이 좀 더 잘 알고 계실 것이며, 금번 고민해 보려고 하는 부분으로는, 자연 현상과는 별도로 인재적인 측면으로 어떤 부분이 있겠는가라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무언가에 무언가를 던지면 충격의 발생으로 흔들림이 생성되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작은 지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 내에서 그간 벌어진 여러 폭탄의 실험이 그런 원인에 일조하고 있음도 간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우연이 또 다른 지형의 지진 예증을 상쇄시키기도, 그렇지 않은 다른 곳으로의 이전 발생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 건축, 토목 모습들, 이전과는 달리 높아진 층수와 넓이와 댐 등에 놓인 여러 물의 하중의 증가 등이 또한 지진을 일으키게 되는 원인 요소가 될 수 있음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높아진 건물에 부딪히는 바람에의 저항이 지반에 전달되고, 물론 상쇄를 위한 보조물을 축성하였어도, 총체적인 부담의 지반에 전달됨에는 여전히 유효한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건축물들이 높아지고, 지구의 곳곳에 여러 댐들과 많은 건축물들이 세워짐으로 지구의 자전의 흐름에 영향을 주어 진동을 증가 하게 될 수 있으며, 지식의 증가로 이를 방지하고 제어하려는 상응하는 상쇄 효과의 건축 행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전보다는 복잡해진 이러한 현상을 다루기에 필요한 양자 컴퓨터의 시대의 도래와 AI의 등장에의 합목적의 타당함이 이해될 수 있기도 합니다.

지진과 해일이 발생하는데 일조하는 중요한 다른 부분은 없을까요. 나무가 자라듯, 사람의 골격이 생성되듯, 알맞은 영양이 적절히 공급되고 분포되어야 알맞은 성장을 이룸을 압니다. 사람의 골격에 골다공증이라는 증세에 이름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양분의 공급과 알맞은 압력의 지속 등을 통해 가능하다고 합니다. 지구도 그와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피부에 공간이 적절한 수준 이상으로 생긴다거나, 뼈에도 그러하다면 그렇게 좋은 것이기만 한 것인가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은 어떠한가요. 물론 빵의 경우 이스트로 부풀어 오르게 하여 맛이 좋게 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구조물이 그럴 가능성에 대하여는 좀 더 살펴 봐야 할 것입니다.


인류가 필요를 위해 지표면과 지하 등에 있는 여러 필요 광석을 캐어 낸다거나, 원유 등를 꺼내어 사용 하는 등의 일련의 행위로 인해, 나름의 무게 중심에 이동을 주고 있으며, 그 결과는 지구의 요소 요소와 전체의 체계에의 이동을 하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느 공간이 비고 어느 공간이 채워지고, 때로는 이곳 저곳 모두가 비어 있게 되기도 합니다. 이 곳에의 압력은 이전과 같아도, 약해져 주저 앉아 지진이 일어나게 되는 등의 모습이 될 수 있다고 가늠해 봅니다.

높은 건축물은 부담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해당 공간의 흐름에 중심 축을 이루어 주어, 지구의 자전의 흐름에의 진동에 대하여, 공간의 흐름을 제어해 주는 긍정의 효과도 가능할 수 있겠습니다.
높고 낮은 건축물의 증가는 이전의 창조주의 지으신 자연의 우주에의 운행의 효율을 증진시키는 애초의 창작물에 더하여, 추가로 그 효율을 증가하게 하여, 지구 운행의 에너지를 줄여 주는데 이를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부정적인 면도 있을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곤란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대가 갈수록 더 많은 지식을 쌓아나가는 모습에의 타당함을 지지하게 되는 모습에 이름도 당연하겠습니다.

인류가 계속 공간의 무언가를 이동시켜 무게 중심을 바꾸어 주는데 따라, 태양계와 지구의 생명 활동은 거기에 맞추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정도에 따라 안정성의 여부가 달려 있다고 가늠해 봅니다. 다만, 우주 공간을 이동하는 유성, 행성과 그 잔재물과 거리가 유지되기  보다는, 때로는 오히려 다가가는 모습에 이르거나, 다가오게 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이런 사고는 좀 거시적이라고 하여, 누군가에는 무의미 할 수 있겠습니다만, 지진 등은 그렇게 남의 일만은 아님을 알기에 그렇지는 않다고 하겠습니다. 지구 표면에 인류가 필요한 것을 뽑아내어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 부분에 대하여, 원래의 공간을 채워 넣는 등의 지구 면역 기능에 의지만 하기에는, 인류의 행위의 그 속도와 규모가 상대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음으로 지구는 원유 등의 의존도의 세대로부터, 미래적인 에너지의 등장, 사용 방향으로 이동하여 갈 수 있을 것을 의미하며, 무게 중심을 알맞게 균형을 이루어 가게 하는 자구 노력이 된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혹자는 그 빈 공간, 비어가는 공간의 바닥으로부터 지구 중심의 핵에 이르는 데 인공 시술을 하여, 지각을 형성하는 물질을 새어 흘러 들어 그 빈 곳을 채우려는 시도의 가능성을 제안해 보기도 합니다. 물론, 전문가분들이 잘 다루어야 할 부분이겠으며, 인류의 그간 발전시킨 과학, 기술, 의학 등의 진전을 볼 때 이런 시도의 가능성이 유효할 수 있음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긍정의 부분이 있겠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유의 해야 할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는 더 효과적이고 좋은 것으로의 이동하는 모습과 같은 선상이 되길 바래보며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일면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가 있으며, 그분에 알맞은 때에 사람들에게 지식을 주시고, 그 해결에 이를 수 있게 하심을 살펴 알 수 있겠습니다.
지구에 이루어지는 많은 터널과 건축과 구조물과 공간 등의 증가와 무게 중심의 이동이 지구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 이를지, 그로부터 지구의 운행력을 증가시키는 모습으로 향하고 있는지, 지은바 된 지구의 자생력으로 치유와 나아감을 이루어 내는 일련의 모습을 좀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시기가 도래하여 언젠가는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AI, 향상된 컴퓨터의 등장의 시대 도래와 과학 기술 등의 진전을 이루어 가게 된다는 주장의 당위성이, 때로는 거품도 끼는 부작용을 통과하며, 서로간에 어울려 가는 적절한 모습이 됨을 가늠해 보게 됩니다.


 

태양의 비추임과 구름과 산의 높음과 계곡과 물이 흐르고 바다의 깊음과 달의 공전 등이 어울려 지구의 자전이 함께하며, 태양계에 있어서의 위치와 그 일련의 행위들이 모여 지구는 태양계와 한 몸으로 춤을 추어가며 우주의 어딘가를 향해 운행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머문 곳을 떠나기 주저하는 생명체인 사람의 그 모습을 아시는 그분께서, 지구를 흘러가게 하십니다. 이를 안내하시는 이는 하나님 여호와 이시며, 피조물인 존재와 생명체가 함께, 시간과 공간을 친구 삼아 여행을 하게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Oct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