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rculation

 

물이 높은 산에서 흘러 하천과 강과 바다로 모여들게 하십니다. 때로는 얼음, 비, 이슬, 지하수가 되어 흐르게 하십니다.

그 물이 흘러 모이고 저수가 되고 댐이 되고 강이 되어 바다로 들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돈을 만들고 풀어 보냅니다. 그 모습은 물의 흐름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넘치게, 많이, 알맞게, 적게, 부족하게 모아둡니다.

모아둔 물은 증발하기도 때로는 썩기도 하다는 것을 안 이후, 사람들은 무언가를 해냅니다.

 

 

돈도 그러한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이 모아두니 삶이 부패하기도 하고, 그 가치가 시절이 흐르며 떨어져 증발하기도 합니다.

흐르는 강물이 모인 바다와 같은, 세상에 쌓이는 돈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요 

그것은 사람의 내면에 머물게 놓으셨을 겁니다.

소금과도 같은 여러 알맞은 정도의 첨가물을 함께하여 보존되고 그 가치가 유지되게 하시듯, 돈이라는 것에도 그에 대한 알

맞은 이해라는 첨가물이 함께할 때 그 가치를 유지하게 하시며, 필요와 긍휼이 더해져 순환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Case-Shiller US house price index     St.louis Frb

 


S&P 500 index   investing.com

 

위의 자료는 미국 연방은행 중 한곳서 제공하는 집값 자료와 최근 미국 주식 대표지수 시세의 자료입니다.  과거와 지금이 같은 수준이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때론 모순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여러 모습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며, 어딘가 살펴볼 필요는 있다고 보입니다.

많은 돈을 풀어 유동성의 홍수에 살고 있다는 세상인데, 물가 인플레이션은 높아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궁금하며 본인도 그러합니다.   좀 살펴보니, 상승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미 부동산, 주식 등의 자산 가격이 많이 계속 상승하고 있음을 간과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로 먹고 사용하는 생필품 등의 가격이 기술 발전으로 낮게 유지되어 있기에 전체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과거에 10년 정도 일하면 집을 살 수 있었다면, 언제부턴가 20, 30, 40, … 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며, 주식 등의 자산 가격도 그러한 선상에 있습니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만큼 임금이 올라가느냐 에는 그렇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누군가는 수명이 늘어나고 있지 않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임에도, 글쎄요.

여기에 좀 과도하다 싶은 높은 금리와 같은 선상으로, 과도하다 싶은 낮은 금리는 저축이 아닌 투자 투기로 사람들의 모습을 움직이게 하고 있는 자극이 되게 하고 있지 않는가 싶습니다. 안전하고 알맞은 투자 수익을 원하는 그간 중산층의 삶의 모습과 그에 맞는 인간성을 개조하여, 도전적이며 진취적인 투자 투기 행태에 눈을 뜨라고 이끄는 모습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와 그 부작용이 과연 작을 것인가 의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전히 낮은 노동력의 가난한 삶이 존재하고, 그들에게 일을 맡겨 생산하여야 하고, 그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바라는 것이 증가하면, 부담증가와 경쟁력의 하락을 우려해 로봇 등으로 대체되어 가고 있기에, 일부 특정 사람들만이 많은 봉급을 얻게 되어, 부익부 빈익빈이 점차 심각해져서 중산층이 줄어들고 있다는 문제의 그간 여러 제기를 가벼이 보면 곤란한 세대인 것 같습니다. AI, 로봇 등의 적용 후 발생하는 잉여의 혜택이, 지칠줄 모르는 생산으로 인한 과잉도 유념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알맞게 특정 부류를 넘어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이전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전개될지는 미지의 영역인 것 같습니다.

소유보다는 임대라는 계몽은 글쎄요, 인간 본성에 있는 그 욕구를 제어하라는 것인데, 그런 환경을 일찍이 조성하여 그에 적응하게 하는 것이 과연 인간적인 것인가에 의문해 볼 필요가 있으며, 적절한 수준을 유지 가능하게 하는 것이 좋지 않는가 싶습니다.

임대가 정착되려면, 좋은 임대 제도 환경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유지에 합당하며, 주변 여건도 너무 뒤떨어지지 않고, 거주자의 삶의 질도 그렇게 떨어지지 않아야 할 것이며, 배움, 여가, 질병의 제어 등의 유지에도 적절한 수준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곳인 경우는 임대의 정착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보이는데, 여러 서구 국가 등이 일부 이런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기에, 이를 적용하려는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결국 자본주의에 더해 사회주의 성향에 좀 더 무게를 둔 제도일 것으로 보입니다만, 지구가 한 배를 탄 공동체라는 관점을 유지하고, 가난과 약자에 속하는 타인의 삶의 질도, 부유한 사람의 그 바램과 같이 어느 정도 중요하다는 관점을 놓지 않고 접근한다면 좀 더 나은 세상을 이루어 갈 것으로 보입니다. 잘 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인류는 체험의 와중에 있지 않는가 싶습니다.  

높아가는 가격을 제어하기 위해, 많은 공급을 하면 되는 것인가. 물론,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보입니다만, 가격을 높여 공급할 의도라고 여기고 싶진 않아도, 과도하게 높아진 가격에 많은 공급을 이룬다는 것에도 좀 의문이 들며, 여기에도 관련된 작용 부작용의 여러 변수가 혼합되어 있음을 가늠해 볼 수 있기에, 전문가 분들의 견해를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모두를 포함하여 본다면, 여전히 낮지 않은 인플레이션 물가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동산, 주식 등의 자산시장을 포함한 여러 변수를 보지 말고, 몇 변수를 보라는 접근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전체의 많은 부분은 대체로 움직임이 적은 모습일 때에, 그 전체는 안전한 모습이 유지되지 않는가 싶습니다. 중심을 이루는 부분이 견고하고 많고 무거우므로, 안전하게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음을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중산층이 이런 역할이지 않는가 싶습니다.

이런 모습의 좀 더 궁극을 본다면, 인간은 삶의 질을 추구한다는 것이며, 좋은 환경에 거주하길 바라듯,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는 그런 바램을 가지며,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 동등한 위치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전제하에, 똑 같은 삶을 이루어 내려는 것은 이미 인류의 역사의 기간에 그렇게 정상적이지는 않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최선은, 어떤 환경이든지 그 곳을 좋은 것으로 여기는 삶에 대한 긍정자세, 내면을 다룸이 좀 더 낫다는 종교와 철학적 접근이 유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진리의 가르침인 성경의 말씀은 이미 오래 전에 충분히 기록된 바와 같이, 진정 중요한 것은 육체적 삶을 넘어 영적이 부분임을 계속 강조하십니다. 그래서 자족하는 삶이 성경적임을 압니다.

 

 

과거 미국의 금광 개척 시, 엘도라도의 꿈을 품고, 수 많은 사람들이 서부로 향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하는데, 물론, 그로부터 돈을 번 사람은 극히 일부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이런 모습이 우리 인생의 삶의 모습이 아닌 적이 과연 언제였던가 싶기도 합니다. 모험 본성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오늘날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과연 그런 모습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요.

피조물인 사람에게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알맞게 심겨주신 재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다중 지능이라는 학문이 있다는데, 사람에게는 주어진 여러 적절한 재능이 있으며, 영성, 학문, 인문, 의학, 과학, 예술, 운동 등 DNA 유전과 삶의 체험 등의 와중에 자신에게 좀 더 적절한 재능을 발굴하고 그 길을 나아간다면, 각 인생이 좀 더 나은 삶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으로, 관련 모습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다룬 분야로 보입니다.

약간 옆길로 새는 것 같은데, 자신에 대한 이해를 좀 더 잘 이루면 좋다는 그간의 수 많은 인생의 선배의 조언도 같은 선상의 얘기라고 보입니다. 말하지 않고 논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기도 한데, 세상이라는 삶은 이렇게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기도 하기에, 글을 통해 또한 사설을 풀어보게 됨에 이해를 바랍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마6:19-20)  라는 말씀이 매우 형이상학적이며 이해하기 곤란한 것을 다가올 수 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원론적인 말씀을 단지 전하신 것일까요.

때로는 진정 그런가 싶은 구절이 없지 않음과 좀 더 융통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 말씀도 있다고 보임에도, 근본적으로 그 분의 가르침은 진리임을 부정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쌓아 둔다는 것의 한계치는 어느 정도일까요.

성경을 문자대로 해석 적용하면 때로 적절하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쌓지 말라는 것이 아니며, 알맞게 쌓아두어야 하고, 잉여분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은 순환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여기면 좋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알맞은 잉여분은 어디에 있으며, 무엇에 사용되는지 자문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Jan 2021